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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94년, 한 겨울 자취방에서 떨며...

과연 누굴까?

1994년에서 199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, 반지하 자취방에서 추위에 손을 호호 불며 그렸던 그림. 그 당시 한창 잘 나가던 모 여가수 자켓 사진을 보고 그렸습니다. 누구일까요? 정체를 알려드리면 '이게?' 하는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차마 말씀은 못 드리겠는데, 저도 원본 사진이 그다지 그 가수 같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어서(응?) 그려볼 생각이 들었던 그런 그림입니다. 2살 때 베개에 천연색 태극기를 그리면서 시작된 저의 미술인생은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지요.

몇 년 전부터 필요에 의해 다시 그림을 끄적거리고는 있습니다만, 이제는 저렇게 못 그립니다. 15년 동안 아무 것도 그리지 않았다고 해도 보는 눈은 계속해서 커왔기 때문에, 지금 이 순간에 '보는 눈'과 '표현력' 사이에는 진짜 가슴과 머리 사이 만큼의 간극이 생겼습니다. 머리로는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안 따라주는 안타까운 순간의 연속... 그래서 요즘은 영화 비평가 같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. 영화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꿰찬 것처럼 독설까지 퍼붓는 영화 평론가는 결국 말뿐이거든요.

작년 이맘 때, 모 님과 뎃생을 배워보자고 의기투합을 했던 것도 흐지부지 되어버렸지만,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이 미술재능을 되살리는 것입니다. 나이를 먹었어도 같은 머리 속에 있던 재능이니 어딘가에는 잠들어 있겠지요. 미술로 먹고 살지 않더라도, 인생에서 미술실력의 덕을 볼 기회는 얼마든지 많이 있었을텐데, 아마도 그 때의 저는 지금처럼 손이 굳은 본인을 상상도 하지 못했었나 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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